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한영 암살 사건 (문단 편집) === 결과 === 목표를 달성한 간첩들은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주차장으로 다시 내려가 대기시킨 차량을 타고 도주했으며[* 14층에서 지하1층 주차장까지 뛰어서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되지않는다. 설령 아파트 경비원이 연락을 받았다 하더라도 14층까지 올라오기 전에 충분히 탈출이 가능했다. 같은 시각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있던 주민들이 최순호와 윤동철이 내려오는 광경을 목격, 주민을 의식이라도 한 듯 안정적인 걸음으로 걸었다고 한다. 차량에 탑승하는 것도 목격하였는데 운전자는 최순호와 윤동철을 제외한 미상 1명(165cm가량의 키에, 노란색의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이었고, 419동에 사는 장씨는 평소처럼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민들은 통상 주차장 차량 출입구로는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장씨가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를 주차시키기 위해 418동쪽으로 차를 모는 순간, 418동 출입구쪽에서 남자 2명이 걸어왔다. 비교적 침착하고 차분하게 걷던 범인들은 주차장 입구쪽에서 3번째 줄 3번째 칸에 주차시켜 놓은 승용차에 탔다. 장씨는 범인들의 차량이 빠져나갈 경우 그 자리에 승용차를 주차시키기 위해 5분여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범인들이 탄 승용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장씨는 할 수 없이 다른 자리에 주차하고 계단을 통해 집으로 올라갔다. 그 때까지도 범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장씨가 승용차의 종류나 번호판을 볼 수 있다는 생각때문인 것 같았다. 주민이 차량에 한동안 내리지 않고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것도 의식해 차종과 번호를 노출 안 하려고 대기하다가 주민이 하차해 집으로 올라가서야 출발했다.], 즉시 고속도로로 남해안 지역으로 주파, 공작잠수함과 접선하여 귀환에 성공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참고로, 이한영씨가 살해됐던 성남시 [[분당시범단지]] 현대아파트 418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가장 외곽에 위치했고, 아파트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한 [[판교IC]]가 인접해 있어 살해하고 현장을 빠져나가기가 아주 용이했다. 살해 현장은 15층에 옥상이 딸려있는 14층짜리 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으로서, 거주하는 사람외에는 출입자가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aID0DBs8d74)]}}}|| || 1997년 2월 27일에 있었던 그의 장례식. || [[파일:243434234.jpg]] 분당차병원 이사장이 이씨의 치료비 1천4백여만원 전액을 면제해주었으며, 이씨가 숨지기 직전 10여분 동안 중환자실에서 이씨의 부인, 장모 등 가족들이 참석해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배를 올렸는데 예배도중 이씨가 숨지자 부인 김씨는 이씨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오열하다 실신, 병원측은 이날 오전 이씨의 사망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자 유족들에게 통보한 뒤 원무과를 통해 영안실에 빈소를 마련할 것을 요청, 비어있던 7호실을 이씨의 빈소로 준비하였다. >'''보도가 터지자 나는 개인의 안전도 생각해야 했다. 모든 매스컴이 보도한 것처럼 어머니 일행의 망명은 북한의 최고권력층 주변까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었고, 이는 김정일에게 어마어마한 추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성미로 보아 망명한 어머니 일행의 추적하는 것은 물론 망명의 한 원인을 제공한 나에 대한 분노도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 >'''내가 서울에 온 뒤 얼마 지나 남한 언론에 평양의 관저 얘기가 나간 적이 있다. 15호니, 85호니 하는 숫자로 얘기하는 관저 명칭은 극소수밖에 모르는 사항이다. 어머니는 김정일이 관저 명칭이 나온 신문을 들고 와서 "어떻게 남조선 아이들이 이렇게 알 수 있을까?" 하며, 혹시 내가 서울에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내비치기도 했다고 한다. 15호 관저라는 숫자는 식구들밖에 모르고, 없어진 식구는 나밖에 없으니 그런 추측은 충분히 가능했다. 다만 남한에 있다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크게 발표했을 텐데, 나의 망명사실이 발표 안됐으니 남한에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럴 정도로 내가 밝힌 정보는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극소수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 >'''김정일이 내 위치를 확인한 이상, 거기다 어머니 일행의 망명으로 북한의 위신이 추락한 상황에서 나를 가만둘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 - "어머니,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362-363P)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